삶은다껌

소설 - 수확자

초끄네끼 2023. 4. 18. 11:37

저자 = 닐 셔스터먼 Neal Shusterman

주의. 수학자(mathematician)가 아니라 수확자(scythe)를 뜻한다.

 

인공지능(극중 이름은 썬더헤드)이 극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행정부를 대신하여 전세계를 관리하는 시대가 배경이다. 썬더헤드는 지배가 아니라 조용히 봉사하는 관리를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의 죽음이 사라지고, 원하는 모든 이들은 사고든 자살이든 육체만 보존되는 상태라면 다시 재생될 수 있다. 원하는 경우, 재생 과정을 통해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생이 가지고 오는 부작용 중 하나인 인구 증가는 인공지능도 어쩔 수가 없다. 지구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 그래서 썬더헤드의 반대편에는 수확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집단, 수확령이 있다. 수확령에는 십계명 정도에 해당하는 나름의 헌법이 있고 수확자들은 그 법에 근거하여 생명을 '수확'할 사람들을 고르고 죽인다. 인구 관리를 위한 장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글로 읽으면서 수확자라는 단어가 영어로 harvester일거라 생각했는데 원작 영어 소설을 검색해보니 그들의 명칭은 scythe(사이드)였다. 서양 문화에서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수확용 큰 낫을 들고 두건을 쓴 모습으로 나오는데 소설 수확자에 등장하는 수확자가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낫을 들고 다니는 수확자는 없지만, 두건을 쓴 모습은 그대로 나온다. 그래서 누구나가 다 상대가 수확자임을 알아볼 수 있다.

공포 영화에 잘 나오는, 실제로는 서양에서 쓰는 대형 낫. 이게 scythe다. 사진 = https://1sagain.tistory.com/manage/newpost/?type=post&returnURL=%2Fmanage%2Fposts%2F

영어 공부 삼아 검색을 좀 더 했더니, scythe는 낫을 뜻하는데 소설에서는 이걸 수확자라는 의미로도 쓴다. 저승사자는 reaper로 나오는데, reap 자체에도 수확이라는 뜻이 들어있긴 하다. Harvest도 수확이라는 뜻이 있고, harvester는 수확자다. Reap와 harvest는 이음동의 정도 되는 관계일까? 여튼, 서양 저승사자는 자기가 직접 사람 목숨을 거두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묘사되는 모습 자체도 섬찟하게 낫을 들고 다닌다.

 

우리 문화에서는 저승사자 또는 저승차사라는 말을 쓴다. 사자나 차사는 둘 다 대행자나 심부름꾼 뜻을 담고 있으니, 우리네 저승사자는 자기가 사람 목숨을 직접 거둔다기 보다, 죽을 때가 된 사람에게 가서 그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조금은 더 인간 친화적인 역할이랄까? 단지 문화의 차이 정도로 보자.

 

소설 수확자는 3부작이다. 1부 수확자, 2부 썬더헤드, 3부 종소리다. 양이 좀 부담되기는 하지만 대단히 재미있다. 그런데 과학소설 애호가인 내 입장에서는 수확자는 과학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미흡하다. 사람의 생명을 재생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추락해서 몸이 산산조각난 경우도 그냥 '재생센터'에 며칠 있다 보면 멀쩡하게 되살아나는 정도로만 표현될 뿐이다. (과학소설로서의 미흡함이 소설의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인공지능 썬더헤드의 경우, 지고지순하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계로 나오는데 그 논리구조나 서버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묘사가 없다. 역시나 아쉽지만, 소설 전체 재미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소설 수확자를 과학 소설로 분류하기 보다는 말 그대로 소설, 굳이 분류를 하자면 환상 계열로 넣겠다.

 

작가에 대해 상세한 검색은 안 했다. 이야기 전개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그런데, 소설로 받은 느낌으로는 작가가 종교를 무지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 '음파교' 즉, 조화로운 소리를 숭배 대상으로 삼는 종교 집단은 소설 내내 약간 무시된다. 전혀 실체도 없고 의미도 없이 오로지 근거 없는 신념만 가진 집단으로 그려질 뿐이다. 그런데, 소설 후반부에 음파교의 지도자 집단에 해당하는 몇몇 인물들의 변절 또는 흔들림 없는 신념을 보면 지금의 사회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잘 느껴진다. 대체로 종교를 무시하지만, 그 신념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믿음은 존중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그래도 종교에 대한 비판이 더 많다.)

 

소설 수확자. 며칠간 푹 빠져서 재밌게 잘 읽었다.

 

내가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소설 구성과 흡사한 구조가 몇 개 있어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1부 수확자 초판이 2016년이니 내 구상이 더 빠르긴 하지만, 작가로서의 능력을 생각하면 내가 혹시라도 나중에 소설을 내서 표절 비판을 받더라도 할 말은 전혀 없겠다. 구상만 하면 뭐 해. 실행에 옮기고 작품을 공개해야 권리라도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