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 꿈을 꾸는 이유, 그리고 존재의 이유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들은 자면서 꿈을 꾼다. 잠이 왜 필요하며, 육체가 자는 동안 뇌는 왜 꿈을 꾸는가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잠이 필요한 이유는 뇌를 포함한 육체가 휴식을 필요로 해서라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대한수면연구학회에 따르면, "24시간이상 안자는 경우는 혈중알코올농도 0.1%의 상태"와 같다고 한다.
그런데 뇌는 왜 자는 동안 푹 쉬지 않고 꿈이라는 형태로 활동을 하는 것일까? (꿈은 REM(Rapid Eye Movement, 급속 안구 운동) 수면 단계에서만 나타난다. 비-REM 동안에는 뇌도 잔다. 즉, 쉰다.)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이론이 강한데, 최근 읽은 책에 따르면 뇌의 시각 기능이 다른 기능(촉각 등)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꽤 참신하고 독특한 이론도 있다.
자는 동안 당연히 눈을 감게 되고, 이런 상태에서는 다른 신경계(촉각, 청각 등)가 순식간에 시각 영역을 차지하여 뇌 신경계를 재구성하려 든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불과 한 시간 안에 이런 침범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꿈은 시각 피질이 점령당하지 않게 막아주는 수단"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이 맞다면, 사람이 뇌를 지배하는지 아니면 내가 뇌에게 지배받는지 좀 헷갈린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뇌과학계의 권위자인 저자가 실존에 대해 무슨 결론을 내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그래도 내가 뇌를 지배하는 즉, 나라는 존재는 뇌를 이용해서 지금 우주에 잠시 실존할 뿐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정말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 꿈의 신비와는 별개로 최근에는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론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아직, 실험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주가 무한하다면 저 멀리 어딘가에는 여기와 똑같은 세상, 심지어 나와 아주 비슷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 그게 바로 무한의 힘이자 신비다. 또는, 양자역학적 확률 세계에서는 모든 종류의 사건 발생이 가능하다. 평행우주론이 맞다면 이쪽의 나는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고 저쪽의 나는 이미 죽어있을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다 있다면 전통적인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능력 가치는 확 떨어진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다 가능한데 신이 디디고 설 의미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한 우주에서는 나는 매 순간 신에게 감사할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살고, 다른 우주에서는 매순간 신을 저주하며 나를 왜 이렇게 살게 하느냐고 이를 갈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한 자체가 신일까? 일부 종교에서 말하듯이 인간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이 신의 존재 의미라면 얼추 말은 되지만, 미약한 인간으로부터 굳이 추앙 받아야 흡족함을 느끼는 신이라면 어째 좀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가능성을 다 던져놓고선, 그 중에 나를 인정하는 이들에게만 의미를 가지겠다? 이상하다.
"꿈"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자면서 보게 되는 다소 비논리적인 영상의 집합도 꿈이라 불리고, 밝은 미래를 바라며 현재를 준비하는 과정도 꿈이라고 불린다. 내가 세상 모든 언어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우리말과 영어에서는 꿈이 두 가지 전혀 다른 느낌의 뜻을 다 가진다. 동음이의라 불러도 될 정도로 이질적이다.
자면서 보는 꿈이 기억을 재정리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시각계가 다른 감각계에 점령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든 뇌는 우리를 싣고 가면서 (또는 우리에게 조종을 받으며) 뭔가 활동을 한다. 나라는 존재는 적어도 이 우주에서는 뇌를 떠나서는 존재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컴퓨터 메모리에 우리가 탑재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위한 꿈도 결국은 현재의 내가 계속 존재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무한이라는 개념은 수학의 역사로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이 있다. 수학은 원래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진 것인가? 같은 뜻의 다른 질문으로는 수학은 발견되는 것인가, 발명되는 것인가?
이 논쟁은 우주론의 인간원리 관점으로도 던질 수 있다. 우주는 그것을 관찰하고 음미할 수 있는 지적존재로 인해 존재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유명한 학자들도 결론짓지 못한 질문에 내가 답을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질문으로부터 느끼는 신비함은 나도 느낄 수 있다. 그걸 느낌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