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은 법칙이다.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고 했으니 이 법칙도 틀렸을까?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우주는 영원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현재 과학이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 바다.
인류의 과학이 지금까지 거의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는 몇가지 '사실'들이 있다.
- 우주는 138억년 전에 빅뱅을 통해 태어났다.
- 우주적 규모의 빅뱅이었지만 양자 요동이 없었다면 얼룩이 없었다. 즉, 너무 골고루 퍼진 우주는 지금까지 진화할 수 없었다.
- 우주에 에너지가 많을진 몰라도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이며 더구나 거기서도 써먹을 수 있는 에너지는 더 제한적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나오는 것으로, 거시적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한편, 오랜 세월 수많은 과학적 위인들의 평생에 걸친 연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 거시적 시간이 비록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미래가 예정된 것인지 아니면 완전 열려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정해진 미래가 있다 하더라도 양자역학적 원리로 인해 확실한 예측은 어렵다는 정도까지는 안다.
-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 우주의 종말 뒤에 무엇이 펼쳐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먹고 살기 바쁜데 이런 얘기를 왜 하냐고? 우리가 왜 먹고 사는지에 대한 이유라도 조금 더 알고자 함이다.
그냥 이렇게 먹고 살다가 세상 떠나면 끝 아니냐? 맞다. 하지만 그 생각에만 갖혀 있다면 세상 사는 재미가 정말 없다. 종말이라는 정해진 목적지 하나만을 보고 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나름 재미를 찾는다면 더 이상 해줄 말은 없다. 세상 사는 관점은 머릿수만큼 많으니.
태초의 양자 얼룩이 대략 지금의 우주 모습을 만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얼룩이 정확하게 지금과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고 확신할 순 없다. 시공간에 흩어졌던 에너지와 물질이 다시 뭉쳐 별이 되고 행성이 되는 과정에서 다시금 양자역학적 요동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이치와 닮았다.
기왕 사는 거 좀 재밌게 살면 좋겠다. 정말 재미없게 살 것이라면 진짜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살면 좋겠다.
기쁨은 잠시인데, 슬픔은 오래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슬픔을 곱씹기 때문에 단물 빠질 때까지 슬픔을 되새긴다. 기쁨은 잠시 즐기다가 이내 그 기쁨의 강도가 서서히 사라진다. 슬픔은 좀 더 빨리 사라지고, 기쁨의 단맛은 좀 더 오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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