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정해져 있고, 미래는 미정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수학적으로 상상해보면 더 그렇다. 지금을 기준으로 해서 명확과 불명확이 확실히 나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뭔가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내 재주로 증명은 불가능하다.
미래가 열려 있다면 과거도 열려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것 역시 뭔가 이상하다. 나는 내 과거를 기억하고 있고, 또한 지금 시대를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행동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에 기반한 과학적 상상으로는 먼 미래도 뭔가 이미 찍어놓은 영화처럼 이미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시공간을 식빵 자르기에 비유한 상상인데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겠다.)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만일 지금 우리가 시간을 거꾸로 가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우주의 수축이든 뭐든 우리는 지금 어떤 이유로 인해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으며 당연히 우리 과거는 정해져 있다. 다만, 우리는 미래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므로 미래가 열린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런 상상이 맞다면 우리 미래는 정해져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없는 것이다. 미래도, 과거도, 따라서 당연히 현재도 우리는 이미 정해진 길을 그냥 따라가고 있을 뿐이므로.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다소 암울한(?) 상상을 벗어날 수 있는 답 한가지는 양자역학적 평행우주의 존재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따라서 과거도 열려 있다.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내 경로로 이르는 과거로부터의 길은 하나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지만 과거에 무수한 선택지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 중의 한 길을 따라 왔을 뿐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경로는 다른 내가 선택한 현실로 다른 어느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자역학적 평행우주 역시 다소 허무한 답이 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도대체 여기의 나는 무슨 의미를 찾아 다니는 것일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상대론적 상상으로 미래가 정해져 있더라도, 정작 나는 그 미래를 모른다.
양자역학적 평행우주가 무수히 존재하더라도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나는 서로 소통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즐기며 삶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지 않다면 우주 전체의 의미는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이 말을 했다니까, 정말 똑똑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래?
양자역학적 얽힘은 현대 과학이 이미 이론과 실험으로 모두 증명했다.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다만, 정보 전달은 안 된다고 증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얽힘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나의 존재와 인지가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다른 이의 존재와 인지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얼핏 느낄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개판으로 살아도 그냥 한번 살고 끝이겠지 뭐.
무수히 많은 내가 있다면 여기의 내가 개판 친다 해도 다른 곳의 나는 똑바로 살면 그만이지 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참 멍청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우주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를 느낄 수 있는 생명이 있으니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생명은 서로 얽혀 있다. 내가 개판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에게 분명히 해악을 주는 행위다. 우주의 기본 존재 이유에 반하는 행위다.
늑대는 사슴을 잡아 먹는다. 사슴은 풀을 뜯어 먹는다. 즉, 풀을 잡아 먹는다. 하지만 그 자체가 개판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사자가 사슴을 먹는 것은 사슴을 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존재 이유는 다른 사람을 해하면서 개판으로 살아라는데 있지 않다. 우주가 뭔지 삶이 뭔지 이런 걸 좀 고민하라고 사람 껍데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모든 것은 얽혀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설사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한들 그렇다면 그걸 정한 존재는 뭔가 뜻이 있으니 그걸 정했겠지.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이해는 할 수 있다. 내 주위가, 내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상황은 생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고의적으로 다른 이를 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의 일부라고? 그런 것들도 보면서 참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누군가 정해놓은 운명이라고?
내 운명이 정해져 있다 한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은 지금의 내 마음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삶의 의미는 그런 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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