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읽기 시작한 책의 제목이다. 세상에 100% 확실한 일은 없다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일 또 동쪽에서 해가 뜰 것이라는 것은 거의 100% 확실한 사실이다. 수십억년이나 수억년의 과거를 빼고 봐도 최소한 지난 5천여년,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이래 태양이 안 떴다거나 서쪽에서 뜬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태양이 반대쪽에서 뜨는 즉, 지구가 갑자기 자전 방향을 바꾸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태양은 미지의 현상으로 인해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확률은 아주 낮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확률의 힘(?)은 점점 커진다. 내가 차도 곁 인도를 걸을 때 버스나 자동차가 인도로 튀어들어올 확률은 태양이 갑자기 터질 확률보다는 높다. 다만, 사람들이 대체로 제 정신을 가지고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이라 믿을 뿐이니 나는 안심하고 보도를 걸어가지만 미친 사람이나 아니면 갑자기 정신이상 또는 심장마비로 인해 운전자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분명히 늘 우리 곁에 있다.
미국이 이란에 미사일을 쏠 것이라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 이런 일들은 사전 징후가 있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제발이지 심각한 전쟁까지는 가지 말 것을 기대하지만 세상일은 어떤 독단적인 집단에 의해 늘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간 경우가 많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거나 고려할 수 있는 개인생활 범주의 일들은 많다.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으면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확실히 대체로 맞다. 하지만 잠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약간의 위안감은 또다른 변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 건강을 갈아 넣는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주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살아 있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 안에서도 우리는 확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주식이 내일 얼마나 오를지 소숫점 이하 확률로 예측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여러 정황 변수들을 고려할 수는 있다. 여기에도 감은 들어가지만 그래도 이것이 나름 많은 변수를 고려한 예측성 감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런 말을 쓰면서도 나는 거의 모든 경우를 '그냥 감'에 의존한다. 이런 버릇을 얼른 고쳐야 한다.)
확률을 너무 따지면 '저 사람은 계산에만 치중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확률 예상은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달리기를 하면 건강에 좋다라는 것은 추천해도 좋은 말이지만, 지금 주식이 대세니 내일 당장 주식 비중을 늘이라는 말은 좀 위험하다. 그러다가 주가지수가 내려가는 쪽으로 작동하면 어쩌려고.
중요한 것은 한여름 밖에 내놓은 엿가락처럼 흐느적거리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서 살아가는 자세다. 모든 결정의 책임은 내게 있으며, 지난 결과에 대해서는 집착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나쁜 일들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지만 내 통제를 벗어난 소수 권력 집단이 세계 평화를 해하는 행동을 하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도 없고 거기에 너무 몰두할 필요도 없다.
나의 작은 행동이 카오스 효과처럼 세상에 좋은 쪽으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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