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평행우주에 관한 상상

초끄네끼 2022. 10. 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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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또는 다중세계. 사람의 지적 호기심을 아주 강하게 끌어당기는 주제 중 하나다. 평행우주는 (정말로 있다면)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론된다.

첫째, 공간적 무한함에 따른 평행우주.
우주론이 발전하면서 이 우주는 유한한 것이 아닌 무한한 공간에 펼쳐져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이다. 무한이라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질 수 있다. 아득히 먼, 그리고 아마도 당연히 관측 가능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그 곳에서는 우연히도 지금 태양계 및 지구와 똑같은 나아가 나와 똑같은 조합의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정말 무한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평행우주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경우는 그 먼 곳의 나와 내가 소통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정도로만 일단 이해할 수밖에 없다.

둘째, 시간적 무한함에 따른 평행우주.
결과적으로 공간적 무한함과 비슷하다. 우주는 현재 관측으로는 열평형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 어떤 이유로든 다시 또 빅뱅이 일어나고 또 우주의 진화를 겪고... 이렇게 무한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기와 똑같은 세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아쉬운 점은 소통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약간 변형된 버전으로는 지금 우주가 유한하더라도 우주를 넘어선 규모에서는 또다른 빅뱅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수많은 탄생과 멸망 사이에 여기와 같은 세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론이 있다.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이를 수 없는 저 먼 곳의 평행우주는 사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의미로만 신기할 뿐.

자, 이제 가장 호기심과 상상을 나아가 삶의 방향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셋째, 양자역학적 중첩에 따른 평행우주.
양자역학이 밝힌 사실 중 하나는 소립자 세계는 확률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며 이러한 확률 파동이 어떤 거시적 물체 또는 관측적 행위와 부딪히면 그때서야 실체를 가진다는 것이다. 실험으로 밝혀진 현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상상이 (그렇다. 아직은 실험적 증거가 없다.) 이 모든 확률적 가능성이 오롯이 실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적 평행우주는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아직은, 지구 기술의 한계상, 내 바로 옆에 존재할지 모르는 다른 나와 아무런 소통 수단이 없지만 언젠간 소통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부른다.

나는 매주 복권을 산다. 아쉽게도 아직은 대박을 매주 기다릴 뿐이다. 몇십개 로또 공이 서로 튀기면서 여섯 개 당첨번호로 나오는 과정은 완전 무작위적이다. (물론, 처음에 공을 쏟아부을 때의 초기 조건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도 사실은 무작위적이다.) 이쪽 우주의 내가 가진 복권 번호는 역시나 꽝으로 나올 테지만 -_-; 확률상 저쪽 세계의 내 번호는 이미 당첨되었거나 혹은 이번 주에 대박이 터질지 모른다.
로또 결과로 몇 천원이나 몇 만원이 된 나와 꽝이 난 나의 인생 경로는 아주 비슷하겠지만, 몇 십억이 된 나와 여전히 꽝인 나와의 경로는 그 때부터 확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평행우주가 불러 일으키는 상상의 재미 중 하나다. (이런 경로 분리는 앞서 말한 공간적 또는 시간적 무한함의 평행우주에서도 가능은 하나, 다시 말하건대 소통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상상의 재미도 없다.)

만일 어떠한 기술이나 능력(?)을 통해 양자역학적 평행우주에 사는 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나아가 서로의 세상을 넘나들며 살아볼 수 있다면 이거 진짜 재밌지 않을까?

한편, 양자역학적 평행우주는 우리가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책임 의식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공간과 시간으로 무한한 평행우주에서의 행위 결과는 내 책임이 아니다. 그냥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허무한 숙명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평행우주는 소립자 수준에서는 지근 거리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못할지라도 무언가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공간과 시간의 무한 우주에서는 여기의 나는 죽어도 저기의 나는 삶을 살겠지만, 양자역학 세상에서는 그래도 뭔가는 양자역학적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로또 꽝이라는 예상 결과를 받은 나와 당첨이라는 대박을 맞은 저 너머의 나는 그 순간부터 상당히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대박 이후의 나는 방탕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빨리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가능성으로 엮인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쪽의 삶에 뭔가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냥 상상해본다. 최소한 우리는 나름 가까운 (시공간) 거리에서 영향을 주고 받을지 모르니까.

언뜻 불교철학 비슷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양자역학적 평행세계의 삶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것이다.
가능성이 어우러져 있으니 웬만하면 착하고 성실하게 살자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선함은 앞으로의 삶에 더 선함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그런 기대치?

이마저도 아니라면 삶은 정말 무의미하고 덧없이 느껴지니까.

가능성이 서로 엮여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현대 물리학에서 여전히 깊이 연구하는 양자 얽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상상의 수준이 거기 닿기에는 내 지식이 많이 모자란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은 수학적 무작위성이 아닌 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기대이자 추측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을지 모른다는 연구도 진행 중이긴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방향의 연구다. 그런 연구를 막을 권한도 입김도 없지만.)

선한 의지가 모인다면 뭔가를 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악한 의지도 그 나름의 결과는 낼 것이다. 악한 의지가 더 많아지고 가득해지는 세상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나는 이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우리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개개인이 같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인간의 선택이 미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고, 심지어 실제 물리학자 중 일부도 그런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