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 시절,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제일 큰 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가 더 잘 아는가를 두고 주거니 받거니.
누군가 백억을 말하면 거기 더하기 하나. 이런 식으로 잠시 주고 받다가 우리는 얼른 다른 놀이에 또 관심을 돌렸다.
수학적 무한을 처음 배운 것은 고등학생 때다. 8자를 옆으로 눕힌 기호를 보며 신기해했고, 그냥 그게 전부인줄 알았다. 그리고 무한을 살짝 맛보면서 시나 문학에 대한 얼치기 냉소를 던지기도 했다. 무한히 넓은 사랑, 영원히 사랑해 등등.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은 슬슬 알아차릴 나이였고, 사람의 힘으로는 물리적 무한에 도달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으니 시적인 표현에 잘 등장하는 무한한... 이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원래 국어 과목이 약해서 그럴 뿐인데 나름 좋은 핑계거리를 찾았던 셈이다.)
공부를 조금 더 하면서 무한에도 일종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셀 수 있는 무한과 셀 수 없는 무한. 셀 수 있는 무한의 대표 종류로는 유리수(그 중에서도 자연수가 대표다)가 있고, 셀 수 없는 무한에는 무리수가 대표로 꼽힌다. 유리수와 무리수를 합한 것이 실수다. 연속성을 가지는 수인 실수.
두 무리수 사이에는 반드시 유리수가 있고, 두 유리수 사이에도 반드시 무리수가 있으니 언뜻 보면 두 개의 빽빽함(!)이 똑같을 것 같은데 무리수는 셀 수 없는 무한에 속하니 무한의 등급(?)이 더 높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그게 우리 삶과 무슨 관련이 있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는데, 우리가 지금 문명 수준에 올 때까지 수학의 도움이 어마어마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수의 신비함이 있다.
무리수나 유리수에 대한 무한의 수학적 증명은 고교 수학 수준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제, 수학적 엄밀함을 떠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양자 역학은 원래 셀 수 있는 불연속 입자성의 개념에서 출발한 학문이다. 양자 역학이 발전하면서 그 초창기에 이미, 양자 현상은 확률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실험으로도 증명되었는데 확률이라는 현상은 연속성을 언뜻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양자 역학에서는 어느새 시간과 공간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단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측정하기 어려우니 그걸 그냥 단위로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구슬처럼 뭔가 셀 수 있는 입자가 있는 것인지,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그냥 학자들의 설명만 기다리는 입장이다. (양자 역학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기는 하다.)
만일 우주의 기본이 셀 수 있는 입자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유한한 우주는 기본 입자 몇 개로 이루어진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주가 무한할지 모른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우주가 비록 무한하더라도 셀 수 있는 무한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우주는 유리수를 다루는 기법으로 설명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물리학의 대가들조차 양자 역학 현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을 한다. 확률과 연계되는 기본 입자적 행동은 여전히 탐구의 대상인 것이다.
보이저 1호가 수십억 킬로미터 거리를 비행해서 지구를 되돌아보며 찍은 사진은 정말 유명하다. 칼 세이건 박사가 이름 붙인 그 유명한 표현, "창백한 푸른 점".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점점 더 작아진 듯 보일 수 있지만, 수학과 물리를 연구하는 지적 존재가 아직은 우리 인간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중심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지적 외계인이 등장하면 우리의 위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외연이 더욱 확장될 것이다.)
셀 수 있는 무한이라는 관점을 우주적 규모가 아니라 지구 위로만 국한시켜 보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직 탐구할 영역이 엄청나게 많다. 어떤 공학자들은 난류(터뷸런스) 연구가 이제 더 이상 의미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난류라는 지극히 작고 단편적인(?!) 영역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공기 입자는 분명히 셀 수 있는 대상이지만 그 입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수로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미답의 탐구 영역을 남겨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유한한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수학이라는 학문에서는 무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공학조자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학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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