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의 종말이 어떻게 올 것이지를 안다. 우주는 영원하지 않다. 우주가 죽을 때 우리도 죽을 것이다. 우리는 별의 에너지를 남김 없이 쓸 줄 알고 항성간 비행도 할 줄 안다. 이미 찾아낸 외계 생명만도 부지기수다. 그 중에는 지적 문명의 초기 단계에 들어선 곳도 있고, 성간 비행을 꿈꿀 정도로 우주 항해술을 쌓아 올리는 곳도 있다. 어떤 문명은 스스로 자멸했다는 기록도 여러 곳에서 찾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인구를 끝없이 증가시키려 하지 않는다. 진화와 발전의 한 지점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우주는 균형을 필요로 한다. 우주 자체는 영원불멸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주는 균형이라는 토대를 통해서 살아왔음을 우리 모두가 깨달았다.
언젠가 우주가 죽음의 시대로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는 또다른 우주를 아예 만들거나 또다른 우주로 아예 나아가려 한다. 그 방법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우리 고향 별의 남은 에너지만으로도 그런 꿈의 실현의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시간의 종말이 어떻게 올 것인지를 안다. 그들은 또다른 우주를 아예 만들거나 이미 존재하는 또다른 우주로 나아가 끝없이 팽창하려 한다. 우리는 아직 정면 충돌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다른 우주를 찾거나 만들기 전에 이 우주가 명확한 죽음의 단계로 들어선다면 그들이 우리를 결국 침략할 것임을 서로가 안다. 그들은 주위 별들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은하로도 이미 확장을 시작했다.
군사력이라는 면에서, 그들과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도 아직 이 우주가 광대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우회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 별과 같이 자멸해버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 별을 직접 침공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적 존재가 살아가는 별 세계가 있다면 그들을 우회하여 주위 별들을 우선 재산으로 삼는 전략을 쓴다. 우리 주위의 별들도 이미 그들의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우주가 쇠퇴기에 들어가기 전에 답을 찾는 것이다. 또 하나의 우주가 만들어진다면, 또는 다른 우주가 발견된다면 우주를 여럿 만들거나 찾는 것은 쉽다. 우리는 그 중 하나만 가지면 된다. 나머지는 다 그들이 가질 테지만. 그리고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 다중 우주조차 모자라는 시대가 된다면 그들은 또 우리 세계를 기웃거리겠지만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또다른 답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우주가 모자라다면 우리는 시간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탐욕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주의 평화를 나름 지켜온 셈이다. 그들은 이런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전쟁도 불사한 적이 있다. 지성의 발달보다 생존 본능이 더 강하게 지배하던 몇몇 문명은 너무나 빠르게 별들의 세계를 침탈했다. 이미 살고 있던 지적 문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괴해버리고는 자기네들이 차지하였다. 그 팽창의 경계에서 그들 둘은 맞닥뜨렸고 문명의 생존을 건 전쟁을 치뤘다. 그들은 그렇게 수십개 탐욕적 문명을 말살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말살해버렸다. 씨를 남겨두면 언젠가는 또다시 이 아슬아슬한 우주 평화에 위협이 될 것임을 단정했다.
우리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들은 끝없는 팽창이라는 숙명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들이 두렵다.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영원에 다가간다.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영원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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